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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공부

김구의 이중성

by DIY연구소 2024. 3. 6.

https://youtu.be/LM1dceJfH14?si=a3jZ5_syYTPTzj8M

kimgu-1.mp4
16.36MB

이승만 국부 논쟁을 일으킨 다큐 영화 <건국 전쟁> 이 촉발한 또 다른 중요 이슈가 있다. 바로 대한민국 임시정부 주석이었던 김구의 위선과 이중성에 대한 문제 제기이다.

지금까지 김구의 애국심과 민족애 만큼은 좌우 이념을 초월한 신성불가침의 영역과도 같았다. 하지만 <건국 전쟁>이 남북간 전쟁 발발 가능성에 대한 김구의 이중적 태도를 고발하면서 이 이슈가 수면 위로 떠올랐다. 김구의 명암을 조명하는 유튜브 방송들은 있었지만, 국민적 화제가 된 영화에선 처음 있는 일이다. <건국 전쟁>의 핵심 이슈가 아니라서 김구의 위선과 이중성에 대한 논란은 아직 주요 논쟁 이슈로 부상하진 않았다. 하지만 이 문제는 이승만의 신원(伸寃) 및 국부 재 추대 문제와 맞물려 있어서 때가 되면 반드시 논란을 야기할 수밖에 없다. 한 국가를 탄생시키는 데 결정적 기여를 한 아버지, 즉 국부가 두 명일 수는 없기 때문이다. <건국 전쟁>은 이승만 대신 국부의 존경을 한몸에 받아온 김구가 실제로는 과대포장된 민족 지도자였다는 점을 시사했다. <건국 전쟁>에서 밝힌 김구의 이중성 사례는 딱 한 가지였다. 북한이 월등한 군사력을 앞세워 침공하리라는 사실을 뻔히 알면서도 남침 가능성이 없다며 대한민국 국민들을 기만했다는 것이다. 김구는 남북통일정부 수립을 설득할 목적으로 1948년 4월 북한을 방문해 김일성을 만나고 남북 연석회의에 참석했다.

남북연석회의에 참석한 김구(오른쪽)와 김일성(가운데)

남한에 돌아온 김구는 남한 단독 정부 수립을 극력 반대하고 주한미군 철수 등을 요구하며 북한과 같은 노선을 지향했다. 장개석 총통은 그런 김구를 설득하기 위해 1948 년 7월 11일 주한 중국 공사였던 유어만을 그에게 보냈다.

장 총통은 김구가 대한민국 부통령으로 남한 정부에 참여해서 중국 본토에서 북한으로 이어지는 공산세력과 맞서 싸워줄 것을 원했다. 하지만 김구는 유어만의 요청을 묵살했고, 그 이유가 유어만이 남긴 대화록을 통해 세상에 알려졌다.

김구와 나눈 대담을 기록한 유어만 주한공사의 대화록

월등한 군사력을 갖춘 북한이 남침할 것이고 남한 도 공산화될 것이 뻔한데, 곧 망할 정부에 참여할 이유가 없다는 김구의 발언은 충격적이다. 더 기가 막힌 점은 그렇듯 북한의 침공 계획을 확신하면서도 남한 국민들에게는 정반대로 말했다는 사실이다.

https://youtube.com/shorts/MFMrwE07TLg?si=EZXQiiCOb-MrSudB

동족 간 전쟁이 발발하면 어떤 참상과 혼란이 야기될지 모를 리 없는데, 과연 그런 이중성을 보인 사람이 국부라 불릴 자격이 있을까. 유어만의 대화록을 읽고도 김구를 그전과 같은 존경의 눈길로 바라볼 대한민국 국민이 있을까. 지도자에게는 누구나 공과(功過)가 있다. 김구는 일제의 체포와 암살 시도를 피해가며 조국 해방을 위해 싸웠던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최고 지도자였다.  이번에 김구의 위선과 이중성이 드러났다고 해서, 조국 독립을 위해 바친 그의 생애를 송두리째 부정하거나 비판할 수는 없다. 하지만 유어만 대화록을 통해 명백해진 점은, 적 어도 김구가 국부로 불릴 자격을 갖춘 민족 지도자는 아니라는 사실이다. 김구는 이승만이 독재자로 격하되면서 오랜 세월 반사이익과 같은 명예를 누려왔다. 철저한 반공주의자였던 이승만은 북한 김 씨 왕조는 물론 마르크스 유물 사상을 추종하는 좌파 진영에는 눈엣가시 같은 존재다.

https://youtu.be/U_T7pLti2GU?si=Xxy7fYPu2gN25KTX

좌파들이 김구를 앞세운 이유도 김구라는 인물 자 체를 추앙해서가 아니다. 그들에게 김구는 철천지 원쑤 이승만을 국부 자리에서 끌어내리기 위한 일종의 대체재에 불과하다. 북한 국방과학원에서 17년간 출입 기자로 복무하다 귀순해서 남한의 유튜버로 활동하는 김길선 씨. 김 씨는 김일성이 생전에 사석에서 김구를 '견문이 좁은 민족주의자' 취급했다고 증언했다. 북한이 이승만을 죽이기 위해 김구를 더 추켜 세우면서도 내심으론 그를 무시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김구에게는 국가 백년대계의 기틀을 세울만한 이념도, 지식도, 비전도 없었다. 그에게는 새로 탄생할 국가가 자본주의이든 공산주의이든 체제나 이념 따위가 중요하지 않았다. 김구가 북한의 남침 야욕을 숨긴 결정적인 이유는 바로 그 나이브한 통일 지상주의 때문이었다. 세계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새로운 독립국가가 어떤 미래를 추구해야 하는지 제대로 통찰할 안목과 식견을 갖춘 인물이 아니었다는 뜻이다. 한심한 사실은 누구보다 이승만을 추존하고 앞세 웠어야 할 우파 보수 진영에서마저 그를 외면했다는 역사의 아이러니다. 이승만이 4·19 혁명으로 퇴진한 대통령이다.

https://youtu.be/z3ikl3QSi24?si=1VuF5YjitI-a3J4L

그렇기에 박정희는 이승만의 반공 이념을 계승했으면서도 적극적으로 이승만의 명예를 되살려주기 힘들었다. 자신도 군사 쿠데타를 일으킨 약점을 지녔는데 불과 1년 전에 해외로 망명한 '독재자'를 어떻게 국부로 추대할 수 있었겠는가.

이런 정치적 역학관계와 5.16 혁명 동지 김구 아들 김신의 역할로 단지 임시정부 수반이었을 뿐인 김구가 건국 대통령 이승만 대신 국부로 추앙돼 온 계기가 됐다.

야구 경기에는 '텍사스 존'이란 특이한 용어가 있다. 수비를 맡은 야수와 야수 사이의 애매한 사각지대를 뜻하는 용어이다. 타자가 휘둘러 빗맞은 볼이 이 공간으로 날라오면, 평범한 볼인데도 야수들이 서로 포구를 미루다가 놓쳐서 안타가 된다. 결국 타자 좋은 일만 시키는 셈이다. 건국 대통령 이승만이 오랜 세월 독재자 프레임에 서 벗어나지 못한 이유도 어쩌면 텍사스 존과 비슷하다. 김구가 국부 대우의 영예를 오래 누린 건, 진짜 국부 이승만에 대한 좌파의 증오와 우파의 외면이 큰 원인이었다. 결국 북한 김 씨 왕조가 좋아할 일만 시킨 셈이다.

좌파의 증오야 이유가 있지만 우파의 외면은 도대 체 무슨 이유란 말인가. 우파의 외면이 오랫동안 지속된 건 눈과 귀가 가려진 국민들의 역사적 무지 때문이었다.

https://youtu.be/OpJpe5jqN2w?si=pa-XJ2zTdM59ajjI

그 무지에 대한 참회가 바로 이번에 <건국전쟁> 을 관람한 국민들이 흘린 눈물의 의미이다.

https://youtu.be/SqMOfDesFXQ?si=_BK2OhIRW9aTB2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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