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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미공간

오베라는 남자

by DIY연구소 2023. 1. 5.

 

영화 <오베라는 남자>는 상처투성이 노인 오베의 극적인 치유와 변화를 다뤘습니다.

1. 하네스 홀름 감독의 '오베라는 남자'는 동명의 소설을 원작으로 하여 만든 스웨덴 영화다. 59세의 남자 오베(롤프 라스가르드 분)는 상처투성이 노인이다. 그는 어려서 엄마를 잃었다. 사춘기에는 교통사고로 아버지를 잃었다. 고아가 된 오베는 얼마 지나지 않아 아버지와 같이 살았던 정든 오두막집이 불타는 것을 지켜보아야만 했다. 신혼 초에는 아내 소냐(이다 엥볼 분)와 함께 스페인 여행을 떠났다가 버스가 전복됐다. 소냐는 하반신을 잃고 뱃속의 아이마저 잃었다. 몇년 전에는 오베의 모든 것을 긍정하고 받아주었던 소냐마져 병들어 죽었다. 설상가상으로 40년 넘는 세월을 함께 했던 직장마저 잃고 완전히 삶의 의욕을 상실한 오베는 자살을 시도한다.

2. 그의 자살 시도는 번번히 실패한다. 불청객 이웃들이 그의 죽음을 방해한다. 안그래도 까칠한 성격에 원칙주의자인 오베에게 귀찮게 접근해 오는 이웃들 때문에 오베는 정말로 '죽지 못해' 산다. 소냐가 죽고 나서 스스로 외톨이가 되어 같은 아파트에 사는 이웃과도 교류를 단절한 채로 죽지 못해 살아가는 오베를 '살려내는(?)'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그의 이웃사람들이다. 오베는 어린 시절부터 소중한 것을 잃고 생긴 수많은 상처로 만신창이다. 상처는 받을수록 아프다. 내성이 생기지도 않는다. 상처가 아물고 흉터라도 지면 보기는 흉해도 아픔은 덜어진다. 그러나 채 아물지않은 상처 딱지를 건드리면 처음 상처 받을 때보다 더 아픈 법이다. 트라우마, 즉 심리적 상처도 마찬가지다.

3. 오베가 어린시절부터 세상에 대한 불만으로 가득찼던 건 아니다. 오베는 아버지가 일하던 기차에서 발견한 승객의 지갑을 신고할 줄도 알고, 불타는 집에 들어가 사람을 구해내기도 했던 의리의 사내였다. 그러나 거듭 사고를 당하고 소중한 집과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 과정에서 생긴 생채기들이 오베를 한구석으로 몰았다. 결정타는 따뜻한 어머니이자 어여쁜 누이이며 존경하는 여신이기도 했던 사랑하는 아내 소냐의 죽음이었다. 그런 오베에게 새로 이사를 온 이란 출신 이방인 여인 파르바네(바하르 파르스분)의 가족들은 '까칠남' 오베의 요지부동한 마음을 서서히 흔들어 놓는다. 오베에게 파르바네 가족은 사다리를 빌려달라, 운전을 가르쳐달라, 애를 봐달라 등등 여러가지 당당하게 도움을 청한다.

4. 진화심리학에서 말하는 7개의 부분자아 중에서 친애(Affiliation) 부분자아라는 게 있다. 아주 먼 옛날 우리 조상들은 온갖 맹수들이 우글거리는 사바나 초원에서 굶지않고 살아남기 위해서 친구를 사귀고 동맹을 맺어야 했다. 혼자서 생활하는 것은 너무나 비효율적이고 위험했다. 그들은 팀을 이루어 사냥과 채집을 했고, 식량을 공유하고 주변의 약탈자들을 막아내기 위해서 이웃들과 무리를 지어 협력하며 스스로를 지켜냈을 것이다. 친애 부분자아는 우정을 암시하는 뭔가에 의해서 발동되고, 우정이 위협을 받는다는 생각이 들 때 활성화된다고 한다. 오베는 파르바네가 자신의 도움에 고맙다는 표시로 샤프란 향료를 넣은 페르시안 치킨요리를 선물해주자 처음에는 당혹해한다. 나중에 오베는 파르바네에게 운전을 가르쳐준다. 사다리에서 일하다가 떨어져 다친 파르바네의 남편 패트릭을 위해 문병도 가고 그들의 어린 두 딸도 돌봐준다. 소냐와 같이 가던 빵집에서 맛있는 빵을 사서 같이 나눠 먹기도 한다. 상처 속에 둘러싸여 꽁꽁 얼어붙어 있던 오베의 친애 부분자아가 자극을 받아 활성화 되기 시작한 것이다. 음식을 비롯한 유무형의 자원과 기술의 공유는 동맹과 협력의 기본이다.

5. 사소한 다툼 끝에 원수보다 못한 사이가 되어버린 오베의 오랜친구 루네. 노환으로 전신마비가 된 루네가 복지담당 공무원의 농간에 의해 원하지도 않는 요양병원에 강제로 입원되어 아내 아니타와 헤어질 위기에 처하자 오베가 나섰다. 친애 부분자아가 극도로 활성화한 오베의 적극성이 이웃사람들의 동맹과 협력을 이끌어냈다. 집도 없이 상처 투성이의 몸으로 거리를 헤매던 길고양이 어니스트, 그리고 동성애임을 고백했다가 부모님 집에서 쫓겨난 미르사드 등을 돕고 그들을 자신의 집으로 거둬들일 정도로 오베의 변화는 놀라웠다.(현대 유럽 스웨덴에서도 부모는 아들의 동성애를 인정하지 않는구나) 따뜻한 봄볕에 엄동설한의 눈이 흔적도 없이 사라지듯 오베의 얼어붙은 마음은 그렇게 녹아버렸다.

6. 원작소설과는 달리 영화에서는 오베가 친한 이웃이 된 파르바네의 딸에게 아이패드를 선물하는 씬을 별다른 설명없이 짧게 처리했지만, 사실 아이패드의 영화 속 의미는 크다. 오베가 단순히 아날로그 세대의 사고 방식에서 디지털 세대의 사고방식으로 바뀌었다는 뜻이 아니다. 여기서 아이패드는 오베가 이전의 상처를 극복하고 완전히 새로운 사람으로 거듭났다는 것을 보여주는 극적인 '치유'와 '변화'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영화의 키워드는 집과 차다. 집은 영원한 안식처로서의 스위트 홈을 말한다. 어린 시절 자신의 정든집이 불타는 것을 목격한 것은 오베에게 엄청난 정신적 내상(内傷)이었다. 차는 편리한 교통수단이면서도 부친과 아내의 사고 혹은 사고로 인한 죽음을 가져온다는 긍정과 부정의 양면성을 동시에 가진다. 본문에는 언급을 하지 않았지만 사실 오베가 절친 루네와 헤어진 결정적인 이유는 사브 자동차와 볼보 자동차로 서로 허세경쟁을 하던 차에 루네가 그보다 한 등급 높은 BMW를 사버리자 경쟁에 진 오베가 시기심에 불타 아예 절교를 해버렸던 것이다. 진화심리학에 따르면 남자들의 허세소비, 인정욕구는 못말리는 본능이다. 특히 미모의 젊은 여성들 앞에서 남성들은 더욱 허세작렬해진다. 

한경비즈니스에 연재중인 <김진국의 심리학카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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