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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공부

봉황은 가시덤불 속에 둥지를 틀지않는다.

by DIY연구소 2022. 12. 25.

 

뇌물(賂物)코드: “봉황은 가시덤불 속에 둥지를 틀지않는다.

미국의 한 연구에 따르면 지구촌에서 한 해 동안 뇌물로 들어가는 돈이 자그마치 1조 달러라고 한다. 전 세계 GDP의 3% 정도에 해당되는 어마어마한 규모다. 술자리에서는 흥청망청 쓰면서도 과속 범칙금 몇 푼은 뭐가 그리 아까운지 불법인줄 알면서도 뇌물을 주는 일이 주변에 비일비재하다. 뇌물의 역사는 길다. 구약 출애굽기에는 이런 말이 있다. “뇌물을 받지 마라. 뇌물은 지혜로운 사람의 눈을 멀게 하고 의인의 말을 왜곡시킨다.” 세계 최초의 성문법인 함무라비법전이나, 백제 고이왕 시절의 법령에도 뇌물에 관한 조문이 나온다고 한다. 신라 선덕여왕 때 고구려에 원병요청을 갔던 김춘추가 스파이로 몰려 체포됐다.

김춘추 일행은 고구려 보장왕의 총애를 받던 선도해에게 거액의 뇌물을 주고 풀려났다. 뇌물수수가 횡행하는 등 부패가 극성기에 이르면 나라에 망조가 들고, 관료나 시민들이 청렴하면 나라가 흥하는 걸까? 마땅히 그래야겠지만 유감스럽게도 역사를 돌이켜보면 그렇지도 않다. 로마제국은 ‘뇌물의 제국’이라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시민들의 관료에 대한 뇌물은 필수였고, 불법적인 세금징수는 속주 총독들의 핵심 비즈니스였다. 황제가 직접 임명한 최고위 관료도 황실에 비자금을 내야했다. 이런 관행은 수세기를 면면히 이어져 제국 말기까지 존속했다.

조선시대 역시 ‘뇌물천하’였다. 건국 초부터 양란을 거쳐 삼정의 문란이 극에 달할 때까지 부패 고리는 엄존했다. 불법으로 세금을 거두고 뇌물을 받고 폭정을 일삼았던 조선말기 고부군수 조병갑. 그의 부패가 동학혁명의 도화선이 되었음은 다 아는 사실이다. 심지어 고종황제는 철도부설권과 광산 채굴권 등을 서양제국주의 열강에 팔아 황실 금고를 채웠다. 그러나 조선 초기 명재상이자 청백리로 알려진 황희 정승도 부패에 연루되었던 적이 있다. 세종이나 영, 정조 때와 같은 태평성대는 부패가 덜하고, 폭군이나 세도정치 시절에는 부패가 우심했던 것만도 아니라는 말이다. 알다시피 조선은 5백년을 지속했다.

현대사회에도 뇌물에는 동서가 따로없다. 당장에 떠오르는 사람만해도 일본의 다나카 가꾸에이 전 수상, 대만의 천쉐이삐엔 전 총통, 필리핀의 에스트라다 전 대통령, 이탈리아의 베를루스코니 전 총리가 있다. 우리나라 역시 최근 30여년 이래 역대 대통령 본인이나 배우자, 형제 등 친인척이 뇌물수수로 걸리지 않은 정권이 단 하나도 없을 정도다. 삼국지시대라고 뇌물이 없었겠는가? 그 시절의 뇌물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적토마다. 동탁이 당시 최고 맹장 여포를 자기편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활용한 것이 적토마다. 동탁은 십상시(十常侍)에게 뇌물을 주고 자신의 잘못에 대한 면죄부도 받고, 서량자사라는 벼슬까지 받아 20만 대군을 이끄는 막강한 지방 군벌이 되었던 자다.

여포의 동향 친구 이숙이 심부름을 했다. “지혜로운 새는 나무를 골라서 깃들고 현명한 신하는 주인을 골라서 섬긴다(良禽擇木而棲 賢臣擇主而事)고 했소. 여포 아우는 잘 생각해 보시오!” 적토마와 황금 천 냥에 눈이 뒤집힌 여포가 하루아침에 제 의부(義父) 정원을 죽이고 동탁에게 빌붙었다. 저런 멋진 말이 고작 여포를 유인한 동탁의 수하였던 이숙의 입을 통해서 나왔다는 게 유감스러울 뿐이다. 나중에 적토마는 조조의 손에 들어갔다가, 조조가 관우를 스카우트하기 위한 뇌물로 사용되기도 했다. 사도 왕윤의 수양 딸 초선도 여포와 동탁의 사이를 이간질하기 위해 사용된 미인계의 뇌물이다. 조조의 어릴 적 친구였던 허유는 원소의 참모로 활약하고 있었다. 그런데 허유는 총명하기는 했으나, 교만한데다가 재물욕심이 많아서 평판이 좋지 못한 자였다. 하루는 허유가 원소에게 조조를 칠 멋진 계략을 설파하고 있었다.

“방어가 허술한 허창을 급습하고, 동시에 군량미가 부 족한 관도에 주둔한 조조의 군대를 치심이 가할 줄 아뢰오!” 마침 그 때 허유가 뇌물을 수수했다는 보고가 들어왔다. 원소가 발끈했다. “허유! 네 놈이 조조에게 뇌물을 받아먹고 엉터리 계책을 말하는 게로구나.” 허유의 말을 들었더라면 삼국지의 역사가 달라졌을 천재일우의 기회를 원소는 이렇게 날려버리고 말았다. 소설 삼국지에 나오는 뇌물스토리의 백미(白眉)는 유비다. 황건적의 난을 평정하는데 혁혁한 공을 세운 유비는 조정을 틀어쥐고 있는 십상시들에게 뇌물을 바치지 않아 안위현이라는 조그만 고을의 현령자리 밖에 받지 못했다. 오나라 손권의 아버지인 손견(孫堅)이 당시에 환관들에게 뇌물을 바쳐 별군사마(別軍司馬)라는 유비와는 비교도 안 되는 벼슬을 받았던 것과 대조적이다.

물론 그 전에 노골적으로 관직을 제안하면서 뇌물을 요구한 자가 있었다. 십상시의 하나인 환관 단규(段珪)였다. 단규는 유비가 황건적을 토벌하는 과정에서 많은 전리품을 챙기고 치부한 것으로 착각했던 것이다. 유비가 곧이곧대로 말했다. “저는 적법하게 전투에 나섰을 뿐 한 푼도 부당하게 챙긴 돈이 없습니다. 그래서 드릴 돈도 없습니다!” 큰 뇌물을 기대했던 단규가 버럭 고함을 질렀다. “이 누상촌의 비렁뱅이야! 너 같은 자린고비가 돈을 숨겨두고 감히 나를 속이려들어?” 격분한 장비가 단규의 안면을 가격하여 이빨을 두 개나 부러뜨렸다. 이런 과정을 거쳐 겨우 안위현 현령으로 있으면서 부글부글 끓는 속을 겨우 진정하고 있던 유관장 3형제의 가슴에 불을 지른 사건이 일어났다.

조정에서 감사관으로 내려온 독우(督郵)가 엉터리 근거를 대면서 아전들을 닦달하면서 대놓고 뇌물을 요구했다. “현덕공! 그대는 황실의 종친이라고 사칭하고 전쟁의 공로를 부풀린 혐의가 있다고 들었소?” 이번에도 장비가 나섰다. “이 버러지만도 못한 놈! 내 오늘 너를 물고를 내고 말겠다.” 장비는 독우의 머리채를 잡아끌고 나무에 묶었다. 버드나무 가지로 채찍을 만들어 죽도록 팼다. “유비 형님! 봉황은 가시덤불 속에 둥지를 틀지 않는다.(枳棘叢中非棲鸞鳳之所)고 했습니다. 우리 낙향해서 때를 기다립시다.” 동탁의 졸개 이숙의 말과 본질적으로 같은 말이지만 역시 장비가 하니 달리 보인다. 유관중 3형제는 그 길로 관직을 버리고 고향으로 돌아갔다.

심리학 이론 중에 ‘상호성의 법칙’이란 게 있다. 인간은 누군가에게서 뭔가를 받게 되면 그것을 반드시 갚아야 한다는 심리적 부담감을 갖는다는 것이다. 특히 그것이 자신이 원치 않았던 호의일지라도 말이다. 침팬지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래도 선물(膳物)은 선물이고 뇌물(賂物)은 뇌물이다. 일상에서 우리는 친한 지인에게 편하게 자신의 호의와 진정을 표사하기 위해 진정을 담아 선물을 한다. 이렇게 선물은 ‘재정적 부담감’과 ‘심리적인 부담감’이 없는 순수한 우호적인 소통의 매개체이어야 한다. 선물이 자칫 일부 인사들의 부담감 주는 뇌물과 혼동되고 빛이 바래는 세태는 참 안타깝다. 사족 1 : 수컷 침팬지들은 보스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서 털을 골라주거나,

몸 구석구석을 핥아 주거나 나뭇잎 같은 먹거리를 뇌물로 바친다고 한다. 뇌물을 바치거나 아부를 하는 행동이 사람들만이 행하는 문명행위가 아니라 동물적 본능이라는 소리다. 사족 2 : 얼마전에 소위 '김영란법'이 누더기가 된채 국회를 통과했다고 들었다. 과연 얼마나 우리 사회의 부패를 방지하고 투명도를 높이는데 기여할까? 사족 3 : 우리나라 뇌물수수 사건을 많이 조사한 바 있는 관계자의 말을 따르면, 뇌물을 받기 좋아하는 사람은 몇가지 공통점이 있다고 한다. 첫째, 생각보다 부유한 사람이 많다는 것. 둘째, 죄의식 없이 습관적으로 받는다는 것이다. 셋째 특정 종교를 가진 사람이 많다는 것이다. 셋째는 그 이유가 특이하다. 검은 돈을 받고 회개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주위 평판을 높이기 위한 고도의 술책이라고 한다. 

필자: 김진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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